연결이 가져온 대참사, 코로나19 <유러피언>
유러피언 - 올랜도 파이지스.
'19C, 돈이 주도하는 연결의 힘'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꿈꾸는 나라, 유럽. 지금은 어느 정도의 경비와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갈 수 있지만, 과거 운송수단의 발달이 더뎠을 때에는 유럽 여행은 극소수의 전유물이었다. 이러한 유럽에 철도라는 물리적 연결의 혁명을 통해 보이지 않던 벽이 허물어지고 관광업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관광업의 따스한 봄바람은, 21세기 매서운 칼바람이 되어 돌아왔다.
2020 전 세계에 어두운 손길을 뻗친 코로나 19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유럽을 강타한 코로나는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관광산업 비중이 큰 남유럽 국가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스페인이 15%, 이탈리아가 13%, 그리스가 21%로 조사됐다.
관광업의 꽃을 피우고 150년이 넘는 관광업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의 세 나라 모두 이번 코로나 이슈로 뉴스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이러한 유럽의 관광업 발달을 잘 설명한 책이 있다.
올랜도 파이지스 교수님의 유러피언은 19세기 유럽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유럽의 관광업 발달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영향력을 끼친 세 명의 주인공, 폴린 비아르도, 루이 비아르도, 그리고 투르게네프를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당시 유럽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유러피언을 통해 크게 세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연결의 혁명이 불러온 유럽 전반의 변화, 그 무엇보다 큰 변화를 주도하는 돈의 힘, 그리고 국가 간의 자유로운 교류를 지지하는 국제주의와 우려하는 민족주의 사이의 갈등이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유럽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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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철도의 발달과 연결의 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연결의 힘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화 혁명이 일어났고, 그 안에서 전 세계적인 연결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세기 유럽인들에게는 이러한 온라인 연결의 힘만큼이나 강력한 오프라인의 연결, 철도라는 선물이 찾아왔다.
19세기 초·중반 유럽의 철도는 무섭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땅 위의 철길은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주는 역할로 새로운 것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러한 연결을 하나의 문화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고 비용을 절감해서 대중화를 이뤘다면, 연결은 국가 간의 이동 장벽을 허물고 예술과 문화의 대중적 전파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어준 연결은 국제시장과 국제무역을 획기적으로 발달시켰고, 유럽 예술 시장을 탄생시켰다. 나아가 유럽이라는 대륙에 유럽 문화라는 새로운 틀을 선물했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한 유럽 문화는 그에 걸맞은 성장통을 겪었다.
커다란 변화 안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거대한 힘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탈락하거나 소외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저작권이 받쳐주지 못하던 예술은 무분별하게 퍼져나갔고, 돈이 결정하는 취향은 소비자의 취향마저 현혹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정원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종이꽃'
새로운 것들의 이동에 발맞춰 예술이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와 예술적인 측면은 전체적인 상승을 이룬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돈과 예술의 시소 타기'가 강하게 진행 중이었다.
19세기의 예술 부흥 초반에 발전한 예술과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말이 있다,
"19세기에 공정한 음악 평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자본가와 예술가가 맺는 관계는 수직적이었다. 음악가들은 하인과 식사를 같이하고, 제작사나 후원가와 노예계약을 맺기도 했으며, 저작권 보호는 빠른 성장에 비해 더디게 진행됐다. 심지어 우리가 익히 아는 베토벤은 근근이 생활비를 버는 정도였다.
피아노 소유가 급증하면서 악보 산업이 번창하고, 책에 대한 높은 수요가 해적 출판에 붐을 가져왔으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음악인들의 순회공연을 이끌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소수의 예술가를 제외하면 돈의 흐름은 대중의 주머니에서 자본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당시 돈을 만지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이러한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 발맞추는 사람들부터, 거대한 자본으로 예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사람들, 그리고 탄탄한 인맥으로 뒤에서 대중의 취향을 만들어내는 후원자들이다. 시간이 흘러 예술가들의 권리가 보호되고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저작권법이 마련되고 대우가 개선이 되었음에도 예술가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위기는 당시 폭발적으로 증가한 관광업의 발달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광산업의 호재, 예술시장의 악재'
물리적 이동 혁명이 가져온 관광산업의 발달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 또한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중산층을 갖은 영국을 예로 들면, 섬나라의 특성상 여행의 욕구가 있었지만 이동에 금전적 제한이 있던 일반 대중에게는 그저 욕구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던 유럽 내의 여행은 극소수의 영국 귀족에게 지적 성장의 욕구를 풀어주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철도의 발달로 관광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중의 욕구 불만족 또한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해외여행에 그랜드 투어의 축약판으로 즐기는 유럽 겉핥기 여행은 호황을 이뤘다. 관광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발맞춰 갤러리, 박물관, 안내책자, 여행기, 패키지여행들이 수혜를 보았다. 하지만 여기에 웃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고충 또한 존재했다.
해외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생소한 예술보다 널리 알려진 익숙함, 클래식을 선호했다. 관광객을 위주로 하는 '돈이 되는 예술'에 중점을 둔 돈을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스레 새로운 예술적 시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 법이 재정되어도, 이미 만료된 악보에 대한 마케팅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졌고, '돈이 되는 음악'을 추구하는 콘서트홀의 경제학 역시 예술적인 시도의 자리를 좁혀 나갔다.
이러한 연결이 가져온 변화에 대한 우려는 예술을 뛰어넘어 '고유의 민족성'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국제주의 vs 민족주의, 해답은 어디에?'
앞서 말한 성장통은 국가 간 민족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나라가 갖고 있던 고유한 민족 특성이 드러나는 예술 분야는 점점 희석되어 가고 있다. 외국 문화를 모방해서 국가별 예술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고, 각 나라의 변별성과 독창성을 해치는 '서글픈 단일화'가 진행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여기에 우려를 던지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고, 패배한 프랑스의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성장통 속에서 '유럽 문화'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등장했다.
유럽 문화는 "대륙 전역에서 예술적 스타일과 작품을 하나로 종합하고,
또 공동의 가치와 사상에 바탕을 둔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문화를 가리킨다."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은 흑백논리로 어느 하나가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의 견해를 갖는 건 중요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쪽을 너무 지지하면 '극단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르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사이 우려보다, 새 정체성 수립이라는 선물을 받은 유럽은 한 단계 도약을 한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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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파이지스의 유러피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연결의 힘'이다. 19세기 뿐 아니라 그 어느 시기에도 연결은 큰 힘을 갖고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21세기 초연결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오프라인상의 연결에서 오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프라이버시 문제, 보안의 문제, 온라인 독점기업의 잔인함, 넷플릭스와 유튜브 규제 문제 등이 제시된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트리거로 가속화된 '언텍트 산업'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진입장벽이 빠르게 높아져만 가는 언텍트 산업도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철도가 가져다준 유럽의 물리적인 연결 혁명처럼 극복하고 자리 잡아 우리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21세기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어 보인다. 온라인에서의 빠른 연결과 대조적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연결의 흐름이 차단되는 듯 보인다. 전 세계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긴밀한 연결의 실타래에 불을 붙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생생히 보고 있다. 이는 기존에 있던 연결을 차단하려는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켜만 간다.
하나였던 유로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브렉시트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고, 그리스 또한 그렉시트를 언급하며 한때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이태리를 중심으로 한 위기의 유로존 국가들을 살려주자는, "코로나 본드 발행" 의견에 독일은 한발 물러서며 힘을 더해주는 결과가 나왔지만, 그 과정에서 독일은 반대의 입장을 취하며 헌법 재판소까지 개입하여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미국의 강력한 리쇼어링 압력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무역전쟁으로 중국 성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억제하고 있다. 여러 제재들로 다른 국가의 부를 자국으로 가져왔으며, 중동이라는 산유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등 트럼프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종이꽃이 주도하는 흐름'은 막을 수 없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초연결 시대에 진입한 우리는 '세계화의 관점에서 퇴보'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2, 제3 코로나의 위협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 것을 알기에 강대국을 중심으로 자국 내의 기반을 다지는 세계적인 흐름이 올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국가들 간의 연결에 병목현상이 생긴다면, 신발에 익숙해진 원숭이가 다시 정글을 맨발로 헤집고 다니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잠시 정체기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강대국 사이의 한국의 방향성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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