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생각하지 않는 원숭이 <니체의 삶>
니체의 삶 - 수 프리도.
'불쌍한 라마, 불쾌한 니체'
190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생을 마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한 번쯤 들어봤을 그는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르고 '신'을 끌어안고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 남은 니체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런 그의 삶의 흔적들을 저자 수 프리도가 한 책으로 엮었다.
수 프리도의 니체의 삶은 위대한 철학자의 안타까운 생애를 잘 보여준다. 니체의 철학 뒤에 숨겨진 그의 삶은 흥미롭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길을 가며 명예를 원하던 니체는 아주 짧은 순간 그 꿈을 이루는 듯했으나, 결국 미쳐버리고 정신을 잃은 채 10년을 껍데기로 살아갔다.
하지만 오늘날 니체가 원하던 명예는 그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니체의 생애를 따라가며 니체의 용기,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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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니체의 삶은 어둡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정교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밝은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건강, 여성, 가족과의 관계 그 어느 것 하나도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만성적인 질병을 달고 살았고, 그 어느 여성도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점점 가족에게 정신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음악에 관심을 보이던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은 어린 니체가 음악과 종교에 빠져들 게 만들었다. 하지만 목사의 길을 따르려던 니체의 마음 한 구석에는 신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당시 과학과 종교가 부딪히던 시대에 니체는 둘 중 어느 것도 택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저 커다란 흐름에 같이 흘러가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비난받고 미움받고 질타를 받아도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나 신보다 자기를 뛰어넘는 일에 더 집중했다. 학구열이 대단한 그는 당시의 확실성을 버리고, 흐름을 거스르는 용기를 발휘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그의 길 끝에는 신의 추종자가 아닌, 신을 사살하려는 니체가 서 있었다.
'생각하는 원숭이'
장대위의 바나나를 먹으려 하면 물대포를 맞던 원숭이는 '장대를 오르지 마라'라는 관습을 남겼고, 그 후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를 탐하지 않았다. 주위의 만류가 이어지고 나중에는 이유도 모른 채 아무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니체는 이런 원숭이들 사이에서 장대에 올랐고, 이제 그 장대마저 부숴놓았다.
원숭이들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종교에 대한 의문을 니체만큼 공개적으로 표출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던 종교는 그가 빠져들수록 의문을 갖게 했다. 그는 맹목적인 대세의 흐름을 거스를 용기가 있었고, 그 용기의 바탕에는 끊임없는 물음과 공부가 있었을 것이다. 주장의 내용을 떠나 이런 니체의 용기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니체가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니 '후성 유전학' 생각이 났다. 우리의 뇌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간다면, 니체는 순종적인 목사가 되어 건반을 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학습과 주위의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계속해서 길을 만들어 나갔다. 안타깝게도 건강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유전적인 영향을 이기지 못했지만 말이다.
'차리리 니체가 알에서 태어났다면...'
삶에서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입에 발린 소리보다 진정 가족을 원하는 응원은 힘이 된다. 지쳐 쓰러져 가는 동안에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니체에게 그런 휴식처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니체의 어두운 삶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들어준 힘은 가족에게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어머니와 여동생은 병 같은 존재였다. 니체는 신을 죽이겠다는 강인한 주관과 달리 그의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몇 번이고 그 불편한 관계를 끊겠다 다짐했지만, 다짐에 그칠 뿐이었다.
니체가 아플 때 육체적인 도움을 간헐적으로 주긴 했지만, 그의 정신에는 전혀 쓸모없고 지지할 곳이 못되었다. 오히려 해를 끼치고 상실감을 들게 했을 것이다. 만약 여동생이 니체가 자주 권한 학문의 길을 따랐다면? 어머니가 주관을 갖고 양육을 할 능력이 되었다면? 그 안정된 울타리 속에서 더욱 의견을 펼치고, 친구를 대신해 의지할 곳이 생기지 않았을까?
'살을 에는 외로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은 안쓰러움 머져 남긴다. 여동생은 니체의 유산을 전적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의 수단으로 삼으며 왜곡하고 철저하게 이용했다.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만행은 경악을 넘어 역겨움을 남긴다. 그 끝에서는 니체의 유산이 히틀러의 그늘 아래 자리하며 나치의 끔찍한 만행을 돕는 수단으로 쓰이게 된다. 니체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던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가 다른 방향으로 미쳐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가 애타게 찾던 배우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니체의 청혼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여성 혐오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짝을 만나 정신적으로 기댈 곳을 찾았다면 그의 말년이 불행으로 가득하지만은 않았을지 모른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도 한때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바그너의 아내를 흠모하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희대의 지성, 신을 죽인 남자는 그 죗값으로 쓸쓸하게 미쳐버리는 벌을 받은 것일까? 대세를 거스르고, 불확실함을 택하며, 자신의 길을 고수한 결과가 당시에는 암담할 뿐이었다.
니체는 부를 좇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 또한 원치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알리고 그에 따른 평가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정신이 온전할 때 잠시나마 인정받은 그의 철학은 오늘날까지 회자가 되며 니체의 이름을 역사에 뚜렷하게 심어놓았다. 만약 그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기뻐 날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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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역사에 무지하게 무지한 나에게 수 프리도의 니체의 삶은 쉬운 책이 아니었다. 역사적인 철학자의 철학을 책 한 권으로 이해하겠다는 당돌함은 겸손으로 남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유러피언과 니체의 삶을 통해 점차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 어렵지만 싫지만은 않다.
'불쌍한 라마, 불쾌한 니체', 엘리자베스의 교활함은 그녀에게 비유되는 라마가 불쌍할 정도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녀의 만행을 니체가 봤다면 불쾌함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어떻게 가족이란 사람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19세기 예술은 예술을 먹고 성장하는 듯 보인다. 예술가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그 영향력은 또 다른 예술로 나타났다.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 유명한 뭉크의 절규가 니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란 사실을 알고 놀랐다. 유러피언과 니체의 삶으로 본 19세기 예술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지금도 인정받는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니체의 예술은 용기로 충만했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바그너와의 사슬을 끊어버릴 용기, 대세를 거스르고 종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용기, 배움의 그릇을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용기, 미움을 받아도 불확실성을 고집하는 용기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자신감의 바탕에는 분명 확신을 심어준 배움이 있었을 것이다. 살인적은 공부 스케쥴을 즐겁게 소화하는 니체를 보며, 그의 이름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를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그의 여성 혐오 발언이나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철저히 배척하는 행위는 옳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을 극복하는, 대중을 생각하게 자극한 니체의 철학들은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