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기판 살아남기 시리즈 <폴리매스>
폴리매스 - 와카스 아메드.
'평생직장, 아직도 속고 계십니까?'
얼마 전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6학년 초등학생을 TV에서 봤다. MBC 프로그램 「공부가 머니?」 에 나온 연예인 부부의 자녀였다. 그리고 자기 주도 학습으로 수학 100점을 맞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격한 공감을 했다. "왜 특정 과목의 특정 영역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본 산수는 이해가 가지만, 방정식이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크게 공감이 갔다. (수학을 100점 받은 적은 없지만) 내 학창 시절과 비슷하다. 나도 함수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 삶에 왜 필요한지, 낭만주의 작품을 살면서 왜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지, 관심도 없는 악보의 여러 점과 선들을 왜 알아야 하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고 다른 과목에 비해 쉽거나 성적이 잘 나오는 쪽에만 관심을 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 고착되어 있던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와카스 아메드의 「폴리매스」는 위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폴리매스, Polymath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다재다능함 + 연결 능력 = 결과/성과'를 삶에서 생활화 한 사람이다. 역사 속 많은 사례와, 살아있는 폴리매스들과의 대화, 그리고 저자의 집요한 호기심이 합쳐져 탄생한 명저는 큰 울림을 주었다.
폴리매스를 통해 누구나 폴리매스가 될 수 있는 이유, 하지만 쉽게 폴리매스가 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그럼에도 폴리매스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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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매스, 누구나 될 수 있다'
책 속 다양한 폴리매스의 프로필을 본다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통합하는 사고를 통해 탁월한 결과를 만드는 '외계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풀어서 설명해주는 폴리매스가 되어가는 과정을 알고 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영역을 탐구하는 자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에 잠재되어있다.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수월해진 아이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영역을 넘나들며 쏟아지는 WHY?라는 질문은 부모를 괴롭히는(?) 주범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본능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억압하지 않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폴리매스로 가는 길이 조금 더 수월 할 것이다.
여기에 알면 알수록 생겨나는 '호기심'이 만나고, '깊이감'이 생겨나면 결과를 만들어 낼 준비가 되어간다. 그리고 서로 연관이 적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열린 마음, '창의성'을 통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는 과정은 분명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누구나 폴리매스가 될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과거의 대부분의 폴리매스 자리는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일부 선택받은 자들의 몫이었다. 대중화되지 않은 정보와 자유로운 공부는 일부만 향유하는 지적 사치품과 같았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큰 일감들은 대중보단 후원을 받는 다재다능한 폴리매스들에게 쏠림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후원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고, 정보가 부족에서 깊이를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돌아오는 반응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내 주위에 폴리매스를 찾기 힘든 이유'
"누구나 폴리매스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쉽게 폴리매스가 될 수 있다"는 말과 다르다. 21세기의 넘쳐나는 교육의 기회와, 범람하는 정보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우리 주위에 폴리매스를 찾기가 쉽지 않은 이유 또한 분명하다. '사회가 만든 틀과 고착화된 문화'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공장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교육은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 배출에 목적을 두고 '전문성'을 겨냥했다. 그리고 환원주의적 사고와 수학으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과정도 한몫을 했다. 정보혁명은 이와 같은 현상의 증폭제로 작용해 파편화, 전문화를 또 다른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또한 노동자와 관리자의 영역은 엄격하게 나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전문화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현재까지 건재하고 지배적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고착화된 문화로 자리 잡았고, 사회가 만든 틀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 가지 일에 '전문화' 되길 강요하는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 결과 얌전한 단세포 인간들을 양산했다.
폴리매스의 기질, 순응하지 않고 의문을 갖는 태도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불확실성에 흥분하고, 열린 사고로 다가서는 사람은 전문화된 현실에 대거 무릎을 꿇은 모습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은 '원인'보다는 '방법'에 더 집착하고, 어떤 사실에 대한 '이해'보다는 '정보'를 얻는데 더 집중"하는 현실을 맞이했다.
'제2의 르네상스, 우리는 폴리매스가 되어야 한다'
산업화와 공장화의 잔해는 고착화된 문화로 남았고, 이에 맞서는 태도는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에서 구시대적 교육법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와카스 아메드는 '과거 폴리매스의 시대'의 영광을 되찾으려, 개인과 정부, 사회가 계몽하기를 웅변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이러한 선한 몸부림의 바탕에는 '미래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이제 사회는 '인간 학습'보다 '기계 학습'에 더 열을 올린다. 이 매력적으로 부상하는 산업은 인공지능, AI라는 기술의 비약적인 도약을 가져왔고, 가시적인 결과가 꾸준히 나오는 중이다. 우린 '알파고'를 통해 숙연함, 흥분감, 우려를 느꼈다.
하지만 다시 '인간 학습'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 이후 꾸준히 지지하던 '전문가'의 자리를 손가락 튕기기 두 번 정도로 휩쓸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막대한 지식을 품고 있는 인간의 자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인간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통해 재탄생해야 한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 대단할 지라도, 이를 활용하고, 통합하고, 배치하는 역할은 인간의 몫이다. 또한 코앞에 닥친 전 세계적인 문제들, 환경 문제, 일자리 문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통합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의 몫이다. 여기 '생존의 길'이 있다.
기계가 (아직은) 하지 못하는 통합적인 사고, 연결의 능력,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폴리매스는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우물을 열심히 파온 누군가는 머지않아 물이 마르고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악몽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러므로 와카스 아메드의 폴리매스는 단순 추천서가 아닌, 21세기를 향유하기 위한 '필독 생존서'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책의 맥락과 흐름을 통해 배경, 문제의 원인, 해결 방안을 이해하고 변화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생존'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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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매스는 나에게 설레는 충격을 준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그려야 할 미래가 조금 더 또렷해 짐을 느꼈고, 앞으로의 방향성이 더 명확해진 기분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가지의 직업보다 포트폴리오 노동자,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병행하는 편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에 고착된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생계를 생각하면 분명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더 깊은 고찰과, 현실적인 계획을 갖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여기에 앞서 지금 하고 있는 독서와 다른 경험들 외에 기반을 만들 계획 또한 필요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와카스 아메드의 폴리매스는 여러모로 나에게 의미 있는 숙제들을 던져준 고마운 책이다. 앞으로 세상의 모습과 나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