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Book.

식탁에 오른 인간 (금지된 천상의 맛, 오르툴랑) <중독의 시대>

_Bo 2020. 10. 30. 17:50

중독의 시대 - 데이비드 T. 코트라이트.

 

 

'중독 돌려막기'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는 인간의 쾌락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요리가 있다. 신에게 자신이 쾌락에 빠져서 이 요리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 천을 머리에 두르고 먹었던 음식, '오르툴랑'. 성인 남성의 엄지만한 작은 새로 만든 오르툴랑은 현재 무분별한 포획 때문에 법으로 포획과 판매가 금지되어있다.

 

 그러나 포획을 뛰어넘는 인간의 무자비한 탐욕은 조리법에 숨어있다. 오르툴랑에 사용되는 엄지만한 멧새는 밤에 게걸스럽게 먹는 본능이 있다. 인간은 이를 이용하기 위해 멧새의 두 눈을 도려내고 끊임없이 먹이를 먹게 했다. 그리고 움직일 수 없이 비대해지면, 산채로 브랜디에 담가 술을 흡입하며 서서히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리해서 뼈째 한 입에 넣고 갈비뼈와 부리가 으스러지는 식감과 브랜디가 가득 찬 내장과 폐를 음미한다. 프랑스의 한 셰프는 "이 새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살짝 헤이즐넛 맛이 나는 지방층에 둘러싸여 있다. 고기와 지방과 작은 뼈를 한꺼번에 씹으면 다른 차원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오르툴랑은 법으로 금지시켰지만, 재료만 바꿔서 여전히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듯하다. 이번에 쓰인 재료는 나약한 '인간'이다. 돈이 숭배되는 듯한 사회에서 몇몇 기업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리고 서서히 기업의 제품에 중독되게 만들고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든다. 이렇게 잠식당해 지배력을 잃는 순간 그들의 식사는 시작된다. 

'마케팅이라는 천으로 교묘하게 가린 기업의 얼굴 사이로 미소가 뚫고 나온다.'

 

 우리 주위에는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무수히 많은 유혹의 길이 열려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늪에 빠져 중독되기 십상이다. 아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시작되는 유튜브 육아, 마치 지문과 한 몸인 듯한 SNS, 밀가루, 설탕, 지방에 노예가 된 사람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비되는 술과 담배.

 

 이러한 문제들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떠넘기고, 서민과 하층민의 삶을 더욱 끌고 내려가 위아래의 거리를 더욱 벌린다. 그렇다면 쾌락과 중독의 원인들을 없애면 더 나은 사회가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삶에서 쾌락을 향한 본능은 포기할 수 없다. 뇌는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한다. 한쪽을 억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억누르기보다 본능을 현명하게 이용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데이비드 코트라이트의 중독의 시대는 우리 시대의 중독에 대한 성찰을 도와준다. 치밀하게 발전해온 중독의 역사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중독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우리와 같이 숨 쉬며 살아가는 위협들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직시할 수 있는 눈을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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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역사'

 

  쾌락, 악, 중독의 역사는 주인공이 바뀌며 반복되고 있다. 술, 담배, 마약, 설탕, 지방, 도박, 포르노, 인터넷 중독의 역사는 비슷한 패턴을 가졌다. 뇌를 만족시키는 쾌락은 서서히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다. 여기에 기술과 과학이 발달되어 교통, 통신, 산업화, 도시화가 만난다.

 

 인간의 뇌를 서서히 잠식하며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쾌락의 시장은 기술이라는 '중폭제'를 만나 대중화되고 더 멀리 퍼져나갔다. 그 결과 가격은 낮아지고 연결과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그 끝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접근성이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돈과 정치는 쾌락 시장의 공급을 주도했다. 뇌의 보상체계를 만족시켜주는 쾌락은 사회에 깊이 침투해 우려의 목소리를 불러오고, 그에 따르는 규제가 생겨났다. 하지만 돈을 좇는 쾌락 제공자는 규제망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시장의 어두운 측면을 다룬 "의혹을 파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때로 쾌락은 정부의 세금 확보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규제가 강화되거나 값이 오르면 밀매매 시장이 활성화되고, 기술은 이를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쾌락의 공급은 멈추지 않는다.'

 

 쾌락, 중독의 시장을 완벽하게 근절시키기는 불가능하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현상은 근본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보상 본능을 갖은 뇌라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은 멈춘 적이 없고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쾌락, 중독의 시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피할 수 없는 쾌락과 중독'

 

 쾌락은 어느 정도 삶에서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다. 지나쳐서 중독이 되어도 문제고, 억누르면 다른 곳으로 튀기 마련이다. 그저 눈을 감고 억누른다고 해결될 쉬운 문제가 아니다. 눈을 감으면 균형을 잃듯이, 적당함이라는 중도를 걸으려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사회적인 규제와 동시에 '교육'이 중요한 답이 될 수 있다. 어려서 쾌락의 시장을 경험한 사람은 거기에 잠식당하며 자랄 확률이 크다. 그렇기에 사회적 규제와 동시에 교육이 필요하고, 가정에서도 충분한 교육이 가능하다.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뇌의 보상심리에 개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의지력 하나만으로는 힘들다. 자신의 마인드셋을 설정하고 우리 주위의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표와 동기가 만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중독의 깊이와 정도가 심할수록,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내가 SNS의 늪에서 벗어난 과정도 비슷했다. 먼저 항상 나를 기다리는 앱을 지우고, 다른 곳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평소 책 읽는 습관이 전혀 없던 터라 책과 유튜브를 오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SNS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짧은 시간에 해결된 문제는 아니었다.

 

 밀가루, 설탕, 지방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는 동기는 명확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넘어갈 무렵 빠진 비만의 굴레는 고등학교에서야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와 만났다. 그 후 주위의 인스턴트식품, 빵, 아이스크림을 치우고 자연식과 저칼로리 대체식을 채워 넣었다. 쾌락의 돌려막기를 시도했다. 이 또한 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어트 성공에서 맛본 보상은 싸구려 쾌락보다 달콤했고,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식탁에 오르길 거부해라'

 

"궁극적으로 중독 과정은 뇌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아직 뇌를 정복하지 못했다. 미지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일이기에 완벽한 해답은 없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있는 선례와 방법들을 충분히 활용할 우리의 능력은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기술과 과학의 발달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뻗어 나있다.

 

누군가는 향정신성 약물을 통해 치료에 도움을 받고, 누군가는 중독돼 끌려다닌다. 또 누군가는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로 활용하지만, 누군가는 익사당해 떠다니고 있다. 같은 것을 이용하고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물론 사회적 환경설정에 다름과 문제도 있지만, 전적으로 사회의 탓을 하기에는 '우리의 강함'을 너무도 간과한 게 아닐까?

 

 과거의 쾌락과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쾌락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달라 보인다. 과거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종교나 국가, 전문가의 말에 의존하며 '밝혀지지 않은 쾌락'을 맞이했다. 하지만 현재의 쾌락은 모든 걸 밝힐 수 있지만, 교묘하고 치밀하게 왜곡시키고 숨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쾌락'에 직면해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눈을 기르는 일은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개개인이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