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Book.

'달라진 세상, 언더독의 반란' <대통령이 사라졌다>

_Bo 2020. 11. 12. 14:31

대통령이 사라졌다 - 빌 클린턴, 제임스 패터슨.

 

 

'초연결 시대, 스케일이 달라진 위협'


 전 세계 뉴스를 장악한 미국의 대선, 그리고 그 중심에 선 트럼프. 역사상 그 어떤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만큼 표현의 자유를 누렸을까?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그의 생기발랄한 트윗은 한 나라의 경제를 직/간접적 위협에 빠트리기도 한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갖은 나라, 미국과 그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글로벌 벨류 체인의 정상에 위치한 두 나라는 현재 큰 변화를 직면했다. 그리고 그들은 겉으론 역사상 가장 평화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직접 공격도 가하지 않고, 서로 연락도 주고받는 G2의 분쟁.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탐욕과 악취로 가득해 주위 힘없는 나라를 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자국의 국민을 우선한다는 명분 아래 글로벌 생태계 교란종을 자처한 미국은 트럼프의 지휘 하에 분쟁을 이어갔다. 다행히도 그의 횡포가 4년에 그쳤지만, G2의 분쟁은 그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위의 결정권이 제한된 나라들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보고 있고, 지속적으로 피해를 봐왔다.

 

 트럼프는 오일 전쟁으로 산유국의 부를 빼앗았다. 그리고 국가 부채를 늘려 미래 세대의 부를 빼앗았다. 또한 국가적 분쟁을 일으켜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의 부를 빼앗았다. 결과적으로 다른 나라의 '자율성'을 시험에 들게 했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뭉쳐 돌아오는 순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과거 끔찍했던 자살 테러를 뛰어넘는 초연결 사이버 테러로 인한 '원시화된 미국'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전 미 대통령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테러를 다루지만 그 속에선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 맞서는 반미 국가와 언더독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스릴러 소설이다. 실제 전 미 대통령이 백악관과 대통령의 삶을 바탕으로 쓴 내용이라 더욱 사실감이 더해졌다.

 

 다소 진부한 클리셰처럼 보일 수 있는 백악관과 테러 이야기지만 스릴 넘치는 전개와 반전 속에서도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주제들이 던져지고, 그 순간마다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을 선사해준 「대통령이 사라졌다.

 

 소설의 내용은 직접 읽는 재미에 양보하고, 서평에서는 소설의 배경과 상황에 눈길을 돌렸다. 달라진 세상과 우리 주위의 환경, 그 속에 살아가며 달라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현실, 21세기식 고래싸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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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퇴보 사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세상은 마치 현실 속 우리의 내일과도 같다. 날로 발달하는 기술로 인류는 진화하는 중이다. 앞으로 4차 산업 혁명이란 이름 아래 달라질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5G 연결망 아래 운전자는 사라지고, 머리 위로 드론이 사람과 물류를 모두 이송한다. 교통체증이란 말은 구식이 되었다. 그 외에도 삶의 모습은 몇 단계 스케일 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 뛰는 현실 반대편 더욱 어두워진 측면도 존재한다.

 

 일례로 굳이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더라도 점점 편협해져 가는 일부 대중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나와 생각의 결이 같은 사람을 찾기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진 오늘날, 그들이 쌓는 벽은 점점 높아만 간다. 그 벽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모두 공격으로 간주되고, '우리 VS 그들'이라는 은 더욱 견고해져만 간다.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강해지는 동시에 취약해져만 간다. 사람들이 점점 기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미 삶 속 깊숙이 자리한 기술들을 때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초연결에서 '연결'을 장악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단순히 인터넷이 없는 21세기를 상상하면 될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어두웠다. 변화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은 가장 진보된 모습에서 한 순간에 가장 퇴보해 본능에 따르는 원시적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다면 '생존 본능'이 얼마나 처절하고 처참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 결과는 소설에서 보여주듯 초강대국이라도 운에 기대어 기도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기술적 진보에 발맞추기'

 

 이미 수많은 책과 미디어에서 디지털화된 세상의 위협에 대해 다루고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해답을 내놓고 있다.  기술 혁신에 앞서 디지털 보안이 더욱 견고해져야만 한다. 개인은 온라인 사용에 더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외부적 상황에 대한 대책일 뿐, 달라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 내부에 있다.

 

 대화와 교류가 부족해져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앞에 놓인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21세기 가장 진보된 기술을 지닌 세상의 문제에 대한 답은 다소 구식적이어 보인다.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내실을 살찌우는 독서와 다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 늘어만 가는 대중의 독서 욕구와 인쇄 기술이 만나 르네상스 시대의 영광을 누렸다. 

- 마이크로소프트, 인텔같은 유수의 대기업들은 R&D 센터를 이스라엘에 짓는다. 국토의 70%가 사막이고, 분쟁이 끊이질 않는 이스라엘의 선구적인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색다르고 다양한 경험을 위해, 군 복무 이후 먼 나라로 여행을 가는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전문적인 일자리는 사라져 갈 것이 자명하다. 그 속에서 다양한 관점을 흡수하고 다방면적인 시각을 갖은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더욱 복잡해진 세상의 더욱 복잡한 문제들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에 발맞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단순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닌, 다양한 관점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21C 고래싸움'

 

 단지 소설의 배경이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는 점 외에도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또 있다. 국가 간의 갈등. 이미 경험한 일이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도입부에서 언급한 G2의 분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2인자의 성장을 억누르는 지독한 1인자였다. 그 과정에서 편을 가르고, 고립을 심화시키는 모습은 반복적으로 보였다. 플라자 합의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러시아를 견제한 유가 보복, 그리고 이번 중국과의 분쟁. 그 사이에서 울고 웃는 나라는 항상 존재했다.

 

 운이 좋게도 한국은 일본의 침몰과 함께 반사이익을 크게 보고 현재의 반도체 강국의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항상 이익을 보리란 보장이 없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강대국의 불똥이 튈 위협은 항상 존재하고, 연결이 심화되며 더욱 긴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현실이다.

 

 

'새우 등 지키기'

 

 소설이 보여주듯 압박이 임계점을 넘으면 쥐도 물 수 있다. 그 임계점 중 한 축은 '자율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자율성을 잃는다는 것은 국가에게, 개인에게, 성인에게, 아이에게 모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자율성을 지키는 것 만으로 만족스러울까?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고 싶은 자율성은 자유분방함, 제 멋대로인 삶이 아니다. 진정한 자율성은 역설적으로 책임감과 절제력을 전제로 한다. 이를 국가에 적용한다면 책임감은 자국민 안정을 위한 발 빠른 대응, 대처와 한 발 앞선 도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절제해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치적 이유만으로, 금전적 목적만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기술적 우위에 있고 경쟁력을 갖춘다 해도, 영향력이 큰 나라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의 입김 속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을 논하고 대신 결정하는 양측의 사람들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들은 현명한 결정을 위해 건전한 견제와 생산적 토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소위 나랏일을 한다는 사람들의 토론을 보자니, 고찰과 통찰 없이 고통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시아의 작은 점 하나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하고, 세계적인 기술적 우위에 있고,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만약 이런 나라에서 앞서 언급한 진보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유 있는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면? 아직은 또 다른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 소설 속 작지만 강한 나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