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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ADHD 환자가 하버드 박사학위를 땄을까? <평균의 종말>
    서평/Book. 2020. 8. 27. 23:13

    평균의 종말 - 토드 로즈.

     

     

    'Beyond the Average'


     우리의 삶에서 평균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태어나서 기어 다니는 시기, 걷기 시기, 옹알이 같은 발달 과정에서부터 평균적인 프레임이 씌워진다. 학교에 가서는 평균이라는 숫자에 시달리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의 나이와 경력에서 평균적인 위치에 비교당하기도 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것까지 평균의 잣대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 평균이라는 데이터들이 과연 적절한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평균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걸 가장 피부에 와닿게 하는 공간은 학교일 것이다. 평균점수라는 잣대는 학생들을 울고 웃게 한다. 그 넘지 말아야 할 것만 같은 선을 기준으로 열등생이 탄생한다. 심지어 반 평균을 깎아먹는 문제아라는 호칭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평가 기준으로 사용되는 이러한 평균이 사실, 산업화 시대의 사고방식, '최소 비용, 최대 효율'로부터 우리의 삶에 빠르게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은 이러한 평균의 역사와 오해, 그리고 현실을 고발하는 계몽 서적이다. 책 표지에 자랑스럽게 쓰인 "교사 학부모 필독서"라는 말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평균의 세상을 향해 다소 도발적인 혁명을 주장한다. 그 혁명의 중심에는 개개인의 고유함, '개개인성'이 있다.

     

     어려서 ADHD 판정을 받고 학교에서는 문제아 취급을 받던 그는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결혼해 자녀들을 양육하며 생계를 위해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버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연구소를 맡아 이끌고 있다.

     

    「평균의 종말을 통해 평균이 대중화된 배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평균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 깨닫는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또한 아직까지도 부딪치는 평균과 개인성의 싸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책은 분명 "교사 학부모 필독서"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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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케묵은 평균'

     

     평균이 생활이 된 시기는 산업혁명이 태동하던 때이다. 19세기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인간에 관한, 현상에 관한 여러 것들을 수치화하고 평균화한 인물이다. 당시 여러 정부는 국민을 이해하고 사회정책 구상을 위한 기초 토대로 케틀레의 사회물리학을 채택했다. 케틀레 주도하에 평균의 영역은 정부를 넘어 의료, 물리, 공중위생, 실험심리학, 심지어 전쟁에 까지 넓게 펴졌다. 그는 평균을 대중화시킨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케틀레의 '평균적 인간 이론'결함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체 평균은 오용, 남용되어만 갔다. 인간을 토대로 한 온갖 평균적 잣대는 평균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순을 품은 평균적 사고를 이어받아, 산업에 적용시켜 산업화한 인물이 바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이다.

     

     그는 '최고의 효율을 갖는 단 하나의 방법'에 집착하며 빠른 산업화에 발맞춰 대처했다. 현재 쓰이는 조직도나 관리구조 또한 그의 아이디어에서 왔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장의 자본가의 목표는 이윤창출이고, 테일러는 최대 효율로 이윤의 극대화를 가능캐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발 빠른 대처는 성공을 했지만 그 속에서 인간성이 무시당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사라지는 인간의 기계화는 성공이라 부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끝내 평균의 영역은 교육계에 깊이 들어왔다. 에드워드 손다이크, 그는 평균의 개념을 교육에 적용시켜 우등생과 저능아를 나눴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의 성격은 무시한 채 하나의 평균적 잣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저 산업화, 기계화된 사회에서 일할 일꾼을 만드는 또 다른 공장을 세운 셈인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평균, 양날의 검'

     

     책에서 저자는 평균적인 잣대를 논리적으로 깨부순다.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으며, 이제는 그 자리에 개개인성의 논리를 채울 필요성을 강조한다.

     

     먼저 평균은 '개인의 복잡한 특성'을 덮어버린다. 미국에서 1만 5천 명의 젊은 여성의 신체 지수를 측정해 평균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당시의 이상향적인 미국 여성상의 이름은 노르마. 그 후 이 노르마의 신체지수에 근접한 여성을 찾는 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한 명도 미국 젊은 여성의 9가지 체격 조건 평균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평균의 첫 번째 함정이다, 팔은 짧고 다리는 긴 여성과, 팔은 길고 다리가 짧은 여성은 평균적으로 동일하다. 이렇듯 평균은 개인의 들쭉날쭉한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두 번째 평균의 함정은 '맥락'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성격과 성향은 놓인 상황,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으로 변하는 환경이 있고, 모범적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평균은 이러한 차이마저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행동은 '특성'과 '상황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출된다. 둘 중 하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평균의 사고에는 무언가를 하려 할 때 '전형적이고 보편적인 하나의 길'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짙게 깔려있다. 그렇게 자연스레 한 가지 경로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이 경로를 '정상적인 경로'라고 부른다. 여기서 벗어나면 비정상이 된 것처럼 여겨지거나 스스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정상적인 경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단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정상이란 기준이 있을 수 있나? (노르마가 실존한다면 그녀의 길을 따르면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개개인성에 맞는, 최선의 '맞춤 제작'같은 길을 찾는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신랄하게 평균을 까내리는 것 같지만, 절대 평균이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급변하던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평균적인 사고가 알맞은 답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산업화가 태동하던 시기의 기준과 생각이 잔재한다는 사실이다. 여러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에 평균주의적 사고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다. 개개인성에 집중하고 그에 맞는 위치에 고용한다. 왜? 결국 기업에 이익이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교육현장에서는 평균의 힘이 지배적인 암울한 현실을 볼 수 있다.

     

     

    '신세계, 개개인성의 시대'

     

     인생을 살아가며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굴까? 부모님일까? 이런 생각으로 몇몇은 부모가 원하고, 정해주는 길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렸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클리셰, 그리고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는 사실을 속에서 느껴야 한다.

     

     저자의 삶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저능아, 문제아 취급을 받던 학생이 그것도 이른 나이에 부양할 가족까지 등에 업고 공부를 해서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연구소를 이끌고 있을까? 해답은 책 곳곳에서 저자의 마음가짐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그는 저능아가 아니었다, 단지 평균의 잣대가 판단하는 능력보다 다른 능력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문제아도 아니었다, 단지 평균의 틀 속에서 벗어나는 행동이 그렇게 비춰지게 만들 뿐이었다.

     

     평균의 함정에서 저자가 개개인성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핵심은 '메타인지 & 마인드셋' 이 두 가지로 요약되는 듯 보인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 그리고 변화하려는 의지. 그리고 외부 환경의 변화와 도움이 시급하다.

     

     21세기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에 발맞춰 평균주의가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된 얘기다. 우리는 이미 정보화 혁명이라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는 평균의 잣대를 그다지 고수하지 않는다. 서비스는 점점 더 개인화되어가고, 개인 맞춤형 제품들이 늘어날 것이다. 세상은 개인 맞춤, 개인화를 추구하지만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곳도 있기 마련이다.

     

     교육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학교에서 개개인성에 맞춘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그건 1:1 과외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성에 중점을 둔 시스템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학위가 아닌 자격증을 수여하고, 성적 대신 실력을 평가하고,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을 허용할 수도 있다. 훗날 기술이 발달하고 굳이 1:1로 교사와 학생이 소통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날이 오기 전에 이미 실천 가능한 방법이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가정에서의 관심'이다. 가정은 그 어느 곳보다 개개인성이 만개하기 좋은 장소다. 누구보다 세심하고 신중하게 살펴줄 조력자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그리고 깨어 있는 교사 또한 가정만큼 강력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우리에게 위기는 평균에 미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모르고, 내가 거기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진짜 위기다. 개개인성은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평균적 사고에 갇혀있다. 하지만 자신이 갇힌 사실도 모른 채 정상적인 것이라 치부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 책을 통해 내 틀에서 벗어남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개개인성을 더 추구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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