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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그림자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서평/Book. 2020. 7. 31. 19:56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 헤더 모리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전 세계는 뒤틀린 신념이 권력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봤다.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는 시대 상황을 타고 왜곡과 교묘한 프레이밍을 이용해 자신의 뒤틀린 신념을 현실화시켰다. 그 결과 잔인한 학살이 이어졌다. 죄 없는 유대인들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고, 동물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 피비린내 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헤더 모리스의 소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단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 속 배경에 실제 주인공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살을 붙여 만든 수필에 가까운 작품이다.위대한 주인공, 랄레와 기타
차라리 허구의 소설이었으면 하는 이 책을 관통하는 클 줄기의 이야기는 이렇다. 한쌍의 남녀가 수용소 안에서 만나고, 그 안에서 사랑을 키우고, 내부 상황이 안 좋아져 생이별을 맞이하지만, 결국 어려운 상황 속에서 노력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적인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대단했다. 아니, 위대했다. 하지만 사랑 외에도 주목할 점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그에 따른 인간의 여러 모습들이다.'인간 내면의 높낮이'
자신을 벌레 정도로 취급하는 살충제를 든 군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그저 굴복하고 몸을 사리며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잡고 있는 게 최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억압을 받는 상황 속에서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며 상황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상황에 굴복하고 스스로 한계의 선을 긋기보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 심지어 한 단계 더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수용소 안에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래를 꿈꾸고, 자신의 것을 하나라도 더 얻으려 하기보다 나눔을 실천하고, 가시밭길 속에서 가야 할 방향을 찾고 인내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그들의 눈물겨운 사투는 인간이란 동물의 잔인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이 모든 일들은 인간에 의해 벌어졌고, 특정 인간을 위해 진행됐고, 인간에 의해 종료되었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이런 인간 내면의 밑바닥부터 머리 꼭대기까지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그렇다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서 한 없이 어두움을 풍기는,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유전적으로 타고나서? 자라온 환경이 어두워서? 둘 다 맞는 말이다. 인간은 유전적 영향과 후의 환경적 영향 모두에 의해 만들어져 간다.
성경, 심리학, 생물학, 역사 등을 공부해 20세기 나치를 해석하려 노력한 조던 피터슨. 그는 자신의 배움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은 그림자(아우슈비츠의 군인들처럼)와 같은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개개인에게는 스스로를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어둠을 억누르고 조금이라도 밝은 면을 세상에 가지고 나온다면, 이에 사람들이 동참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 점점 더 밝은 세상이 올 것이고, 자연스레 어둠은 그 빛 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역사 속 몇몇 종교를 보면 사람들의 신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바탕으로 얼마나 극단적으로 어둡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신념은 인간의 생존본능, 사회성, 그리고 연결 욕구를 만나 살인을 정당화시키고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 피의 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의 뜻이고 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여겼다.당시 나치당의 당원들의 추악한 짐승의 모습을 단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인간 내부, 외부 환경이 함께 영향을 받으며 싹이 트기 시작한 그릇된 신념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영양분만 골라 먹으며 무서운 속도로 자랐을 것이다. 심지어 혼자가 아닌 주위 다수가 그런 성장을 하고 있으니 성장의 장애물이나 방해가 될 요소도 없었다.
'선택의 영역'
설민석의 큐레이팅으로 유명해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주인공도 나치의 만행에 일조한 한 사람이다. 그가 주장하길, 자신은 국가를 위해 국가가 시키는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했을 뿐이라 말했다. 그가 명령을 거부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고, 자신의 입장에선 그게 옳은 일이라 말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이면에 그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에 눈이 갔다.
2020년 현재를 놓고 생각해보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이윤 창출 외에도 신경서야 할 부분이 있다. 도덕성과 투명성이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도덕성과 투명성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투자자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고 뒤이어 언론의 눈총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의문은 이러한 회사에 속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직원도 있겠지만, 알더라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회사 밖으로 퍼지기 전까지 대부분은 일을 이어갈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절이 맘에 들지 않으면 중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러한 선택은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시 나치의 행동자들은 어땠을까? 일을 그만두면 자신을 죽이겠다는 협박이라도 받았을까?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주위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판단이 흐려진 것일까? 어쩌면 그들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길을 걸은 걸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의 일을 즐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인류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과정에는 다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들도 있다. 그 사건들은 밀림의 사자나 다른 맹수들이 발생시키는 게 아니다.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이 만든 사건들이다. 개개인이 더 나아지려는 노력 없이, 자신의 그림자를 표출하고 드러낸다면 비극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우리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개인은 조그마한 불빛이라도 세상으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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