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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주도권 전쟁 <블루드림스>서평/Book. 2020. 12. 27. 17:50
블루드림스 - 로렌 슬레이터.
'약하지 않은 약한 여자'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약’의 탄생은 이렇다, "특정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 전문집단이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다 > 치료제가 탄생한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약도 이러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너무도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상식은 정신약에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이제 약이 나왔는데, 어디에 써볼까?", 전문집단은 생각한다. 마치 블록놀이를 처음 하는 아이처럼 이것저것 부딪혀보다 우연히 서로 맞물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혀 새롭지 않은 신약이 '또' 탄생한다. 그 옆에서 제약사는 이미 만들어진 약의 (수익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두 발로 뛰는 중이다.
모든 정신약이 그런 건 아니지만 손에 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실을 대부분 반영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암담한 현실을 심리학자이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로렌 슬레이터가 잘 그려냈다. 35년간 약물을 복용하며 살아온 저자의 삶, 치료에 대한 의지, 앎에 대한 열정이 모여 명저, 「블루드림스」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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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바이오 게임'
정신질환 약들은 과연 환자들을 '치료' 할 수 있을까? 오늘날까지 정신질환은 원인 불명의 질환, 완치 방법을 모르는 아직은 미래가 어두운 질환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관련 질환에 대한 많은 약들은 밝은 미래를 그려준다며 수많은 환자의 손에 넘겨졌다. 원인도 모르는 질환을 어떻게 치료한다며 처방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것일까?
거대 자본의 입김은 강력했다. 정신질환 약이 탄생하는 과정, 용도의 변화, 확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두뇌들은 화려한 전술을 자랑한다. 미투약을 찍어낸다. 두리뭉실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약은 최대한 많은 주인을 찾아 수많은 오디션을 보게 된다. 심사단은 이미 거대 자본의 호의에 취해있다.
약의 효과를 어떻게 믿냐고? 걱정 마시라, 제약사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전문가들에게 충분히 달콤한 동기부여를 해주면 그만이다. 여타 담배, 술, 식품, 환경 관련 사업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대중성을 갖게 되는 순간 수익모델은 빛을 발하며 조작에 투자한 금액을 보상하고 남는 수익의 퀀텀 점프를 시작한다.
순수한 치료의 의지로 약을 쓰는 전문가들도 '불확실한 가능성'을 보고 실험대위에 약을 올리기는 마찬가지다. 원인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마저도 부작용을 동반하며 단순 증상을 치료할 뿐, 근본적인 치료하기란 아직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우리는 복잡하게 단순하다'
사람은 복잡하다. 인공 신체,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는 정도로 발달한 의학이지만 아직 뇌의 비밀을 파헤치는 연구는 출발점에 서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뇌는 그보다 복잡한 비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함을 뒤로하고 손쉽게 뇌를 속이는 상황도 왕왕 볼 수 있다.
사람은 단순하다. 뇌를 속이는 '믿음'으로 암을 치료하고 다시 재발시키는 게 가능하다. 이렇듯 강력한 플라세보/노시보 효과는 시중에 나온 소위 '정신질환 약'이라 불리는 것들 만큼 효과가 뛰어나다. 그럼에도 약처럼 부작용은 없다는 장점을 갖는다.
사람은 웃기다. 플라세보 효과에 기대 믿음 하나로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동시에 한없이 나약해 보이기도 한다.
'소음'에 흔들려 잘못된 방향을 향하면 어떤 불행한 결과도 만들 수 있다. 주도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 이러한 소음은 무지에서 나온다.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소위 영향력을 갖은 사람들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물질적인 이유로, 정치적인 이유로 대중을 지휘한다. 혼란 속에서 무지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더 나약해진다.
이쯤 되니 도대체 사람이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 모르겠다. 복잡한 것인지 단순한 것인지 쉽사리 답할 수 없다. 어느 한 가지 답을 내리면 다른 한쪽에서 틀렸다고 말한다.
사람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로 변화한다. 개개인마다 다르게 반응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것을 단순하게 설명하려니 그 어떤 답을 내릴 수 없는 게 당연해 보인다.
마치 시중에 나온 그 어떤 정신약도 답을 내릴 수 없듯이.
‘진정한 치료’
암 투병을 하는 프레드 프로벤자의 「영양의 비밀」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치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내 작은 몸뚱이는 개인 연구소이자 실험실이다.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결과를 기억하고 더 나은 방법을 시도한다. 원인과 치료법 모두를 알지 못하는 만성질환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신장질환에 거리낌 없이 처방되는 혈압약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생을 먹어야 하는 약이 과연 ‘치료’일까? 그 뒤에 따라오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은 더욱 삼키고 싶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한 치료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 움직임, 사고방식에 더 가까운 듯 보였다. 그리고 이번 「블루드림스」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 내 생각이 틀리진 않았구나.
플라세보 효과에 대해서 언급하는 5장은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다. 원인 불명의 강력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너무도 간단한 방법의 효과는 충격적이었다.
사회적 동물 인간에게 공감은 강력한 치료제다. 연결은 상식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했다. 경청은 약물보다 강력했다. 대화는 수수께끼의 답이 되었다. 현대 지성인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문제의 답이 이토록 단순했다.
‘행운’
저자는 강하다. 35년간 약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의 끝을 경험하고, 약으로 행복의 천장을 찍고 내려와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감사함을 뒤로하고 현대의학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약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부족한 점을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인정해야 할 부분은 확실하다. 약으로 바닥을 치고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들도 많다.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난 순간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은 의학계 변두리에서 돈 너머의 것을 좇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돈에 밀려 먼지 쌓인 가능성을 다시 끄집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저자 로렌 슬레이터처럼 선한 탐구의지를 갖은 사람도 있다.
만성질환 판정을 받고 감기에 걸리면 먹는 그 흔한 소염진통제, 항생제 하나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처방받는 그 어떤 약들도, 그 어떤 주사들도 의사에게 다시 되묻고 의심을 걷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게 불행을 뜻하는 줄만 알았지만, 이제는 이보다 큰 교육이 있을까 싶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그 사실을 안게 행운이고, 이번에 명저를 만나 더 구체적으로 확신이 생긴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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